top of page

 

알바생 W군과 염쟁이 M군

 

나는 3개월 뒤 죽는다. 동정도 사치인 인생을 사느라 평생 이십 하고 오 년 동안 일만 했는데 결국 돌아온 건 추가 수당이 아니라 시한부 판정이었다. 거기까지 해도 충분히 좆같은데, 더 좆 같은 건 장례 비용도 내가 모아야 된다는 거다. 공사판에서 번 돈들은 죄다 생활비로 흘러가고, 모아둔 돈은 없고, 연고자도 없는 마당에 잘못하면 얼굴 모르는 사람들과 뒤섞여 한줌의 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바를 시작했다. 올 사람은 없을지 언정 평생 고생한 나 자신이 마지막 순간 만이라도 호화롭게 갈 수 있도록. 시발.

 

 

평화병원 부속 장례식장. 내가 일하는 편의점 바로 옆 건물이다. 꼴에 환자라고 숨이 차는 일은 하기 싫어 알아보다 찾은 것이 편의점 아르바이트 였다. 물론 장례식장 옆에 있다는 사실은 사장님을 만나러 갔을 때서야 알았지만 그렇다고 알바를 포기하기엔 짭짤한 수익이 구미를 당겼다. 남들은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으면 치료 대신 버킷리스튼가 뭔가 하러 다닌다는데 나는 병원에서 치료 안 받는 것만 똑같지 죽을 때까지 일만 하게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놓을 걸. 빚 갚고 생활비로 쓰는 것에 급급해 혹시 모를 상황 하나 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후회해서 어쩌겠나, 이미 내 몸뚱아리는 썩어 문드러졌는데. 내가 하는 일은 물건 바코드를 찍고 재고 정리를 하면서 언제쯤 숨을 거두게 될까 세는 것이 전부였다.

 

 

편의점에는 별의별 손님들이 오갔다. 가장 흔한 사람들은 상복을 입고 칫솔 등을 사러 오는 부류. 그 다음으로는 검은 옷을 차려 입고 커피나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사 먹으러 오는 경우. 가끔씩 환자복을 입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말로 ‘가끔’ 오는 경우여서 이건 제외. 높은 시급을 받는 대신 거의 하루 종일 일을 하는 지라 내게는 습관 하나가 생겼다. 물건 바코드를 찍으면서 흘끗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추리해보는 일이었다.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의미 없어진 시점에서 생긴, 그나마 유의미한 행동이었다. 이 사람은 오래된 친구를 잃었구나. 저 사람은 돈이 더 중요하구나. 앞으로 마주칠 일이 없을 사람들이 행동하는 바를 보면 마치 군상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만 동떨어진 채 각자의 역할에서 움직이는, 낯선 군상극.

 

 

새벽이었다. 찾아오는 손님도, 내가 누군가를 찾는 일도 없는 적막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급사(急死)하는 일이 아닌 이상 이 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기껏해야 아침 일찍 문상객을 맞으려 잠시 목욕탕에 들리려는 상주들이 일회용 세면도구를 사가는 정도가 끝이었다. 곧 죽는다는 선고를 받기 이전에도 잠이 없었다. 몸은 노가다를 뛰느라 쑤셨지만 잠들어버리면 긴장이 풀려 인력사무소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날의 일당은 0원인 셈이다. 어쨌든 밥은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깨어 있으려 했던 과거의 날들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다 필요 없지만.

딸랑-

“어서 오세요.”

손님이다. 카운터만 의미없이 톡톡 두드리던 손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명 수는 젊은 남자와 늙은이, 총 두 명. 젊은 남자는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훌쩍이며 울고 있고 늙은이는 혀를 차고 있다. 혹시 남자의 부모나 친인척이 사망했고 늙은이가 남자를 딱하게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남자가 말 못한 진실이라도 말했을까? 두 사람 모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으니 장례와 관련된 것은 맞았다.

“쯧쯔…민규, 이 녀석아. 그만 좀 울어라, 좀. 아니, 상주보다 네가 더 울면 어쩌자는 거야.”

“아니…아버지, 어린 애였잖아요, 크흡.”

“으휴…이래서야 앞으로 염장이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네가 먼저 가업을 잇겠다 했으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아, 완전히 틀렸다. 지금까지 봤던 부류의 사람들과 완전히 어긋난 부류였다. ‘염장이’가 온 적은 처음이었다. 애초부터 마주칠 일도 없긴 했지만 마주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기껏 해야 내 사후(死後)에 만나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지. 늙은이가 주류 코너에 가서 소주 두 병을 집어왔다. 젊은 남자는 아직도 울음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것인지 훌쩍이고 있었다. 이미 많이 운 것인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늙은이가 소주를 카운터에 내려놓고 1,000원 짜리 싸구려 땅콩 봉지를 옆에 같이 내려놓았다.

“이거랑, 그, 메비우스 그거 하나 주쇼.”

“8,800원 입니다.”

남자가 만원 지폐를 내밀었다. 꼬깃한 돈을 빳빳한 새 지폐와 동전들로 바꿔 건네 준 뒤 습관처럼 봉투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봉투 사용 하실 건가요?”

“마음대로 하쇼. 민규야, 그만 좀 울어라! 언제까지 질질 짤 생각인데!”

갑자기 언성을 높인 늙은이 덕분에 남자는 물론 나까지 헉 하고 놀랐다. 남자도 나만큼 많이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시작했다. 참, 가지가지 하는 사람이었다. 키랑 얼굴은 준수하면서 하는 행동은 어린애였으니까.

“거, 민규야. 이거 들고 와라. 나 밖에서 한대 피고 있을 테니까. 그만 질질 짜고.”

남자가 물건들 사이에서 담배각을 집어 들고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출입문에 매달아 둔 종이 거칠게 흔들렸고 곧 문이 몇 번 진자운동 마냥 움직이다 닫혔다. 편의점 안에는 남자와 나만 남았다. 어색하다. 별의별 일들을 다 해봤다지만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낯설었다. 남자가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고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감정이 좀…격해져서…”

“됐어요, 그럴 수도 있지.”

“오늘, 히끅, 염 했던 사람이, 어린 애였거든요. 이제 막,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였는데, 듣기로는, 교통사고 때문에…”

“아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말동무를 하는 것은 취미에 없는데, 나는 홀린 듯이 남자의 말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남자를 아는 것도, 같이 대화하면 돈이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반쯤 쉬어 버린 남자의 목소리에 맞춰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제가…저희 집 가업 이어보겠다고, 일부러 장례지도학과도 가고, 그랬는데, 쉽지가 않네요…이렇게 울기나 하고….”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초면인데, 이런 말을…”

무슨 생각이었을 까. 나는 주머니에서 200원을 꺼내 카운터에 붙어있던 바코드를 찍고 사탕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른들의 손을 잡고 오는, 멋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주로 사 먹는 싸구려 막대사탕 이었다. 포스기에 동전을 집어넣고 사탕을 남자에게 건넸다.

“자, 먹어요.”

“…아.”

“힘 내시라고요.”

동정인가? 평생 가엾은 인생을 살아왔으면서 꼴에 남 동정 이라니. 나 자신이 웃기고 황당했지만 손은 이미 사탕을 내밀고 있었다. 남자가 사탕을 받아 들었다.

“…고맙습니다. …전원우 씨.”

아주 바보 같지만, 저 사람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잠시 고민했다. 남자가 부은 눈으로 옅게 웃고서 술병이 담긴 봉투를 집어 들었다. 내가 입은 조끼에 명찰이 달려있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남자는 이미 밖에 서있던 늙은이와 저만치 가버린 후였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남자가 위로 받았다는 사실이 아닌,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되는데 200원을 흘려 보냈다는 부분이.

 

 

 편의점의 장점 중 하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환자들이라면 옆에서 누군가가 죽이나 몸에 좋다는 것들을 사다 먹였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행동 자체가 사치였다. 애초에 챙겨줄 누군가도 없었다. 처음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병원에서 그랬다. 매운 음식 같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순한 맛 위주로 먹으라고. 안타깝게도 그런 것을 일일이 챙겨줄 사람은 없어서 그냥 먹는다. 어차피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맛은 원래부터 못 먹는 것도 있고. 그래도 굶던 예전에 비하면 식대 하나는 해결되었다는 점과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 만큼은 어느 누구 부럽지 않았다. 살은 여전히 빠지고 잃어버린 건강이 돌아 오진 않지만.

 

 

그 남자가 다시 찾아온 것은 아침 무렵이었다. 유통기한이 10분 정도 지난 삼각김밥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때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최근 들어 온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살이 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었다. 어차피 잠들어도 마찬가지일 것을 알았으며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 시켜 주는 증상이었다.

“아, 있었네요?”

남자가 해맑게 웃었다. 옷은 여전히 검은 정장 이었지만 눈은 퉁퉁 부어 오르지도, 소매로 비벼서 벌겋게 달아 오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멀쩡한 상태에서 보니 꽤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펑펑 울었다니. 내 생각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아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남자는 비타민 음료 한 병을 집어 들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의례적으로 바코드를 찍었다.

“800원 입니다.”

“선물 이에요.”

“적립이나…네?”

“선물이라고요. 지난번에 저 위로해준.”

처음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이나 어떠한 감정이 섞인 물건을 받은 기억이 있던가? 그 짧은 순간 동안 기억을 헤집었지만 떠오르는 것은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보육원 원장 선생님이 주셨던 싸구려 불량식품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의례적으로 받은 거였는데, 이렇게 뜻밖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받을 줄이야. 남자가 어서 받지 않냐며 손을 다시 내밀었다. 결국 망설임 끝에 병을 받아 들었다.

“저는 김민규 에요. 직업은 뭐… 염쟁이 라고 하죠? 돌아가신 분들 수의 입혀드리고 하는.”

“아…저는,”

“알아요, 전원우. 이름 아니까 더 억지로 알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러면 서로 불편해져서. 나중에 편해지면 말해줘요.”

글쎄, 과연 내가 얼마 뒤에 죽으니 지금 묻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까지 말해줘야 될까. 이왕 친해지자 다가와준 김에 내가 죽으면 염을 해달라 할까? 친구니까 반 값이나 공짜로? 결국 나는 호의도 속물로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매우 슬프지만 사실이다.

 

 

 배탈이 났다. 밤새 쓰리던 속이 결국 탈이 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까지 고역으로 만들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몰랐다. 전날 먹었던 삼각김밥이 정말로 상한 것인지, 아니면 그 남자…민규가 준 음료의 성분이 나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내 뱃속은 부글거리는 위액으로 요동쳤고, 정말 오랜만에 모든 음식물을 게워내야 했다. 병원은 들리지 않았다. 가봐야 듣는 말은 ‘왜 이제 오셨어요’ 같은 걱정을 빙자한 꾸중일 뿐일 테니. 돈 써가며 혼날 바에는 돈 아껴서 더 좋은 자리에 묻히는 것이 이득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곧 죽을 사람에게 그 정도의 아량은 있어야 맞으니까.

 

 

하루치의 봉급을 깎이는 대신 하루를 쉬었다. 꽤나 값어치 있는, 혹은 돈을 낭비한 하루의 휴식인 셈이었다. 사장님은 더 쉬어도 된다 했지만 내가 자원해서 나가겠다 말했다. 더 이상의 휴일은 돈을 흘려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발을 질질 끌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직도 몸이 무거웠다. 죽을 때가 되면 영혼의 무게만큼 몸이 가벼워 진다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지은 죄가 많았나 보다. 바깥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핏 들은 기상캐스터의 말에 따르면 이번주는 유래 없는 겨울 장마가 이어질 것이라 했다. 비 오는 날씨는 습기 때문에 움직이기 싫은데, 이런 날에도 일해야 하는 내 처지가 조금은 슬퍼졌다.

 

 

민규다. 금방이라도 구멍이 뚫릴 것 같은 비닐 우산을 쓰고 도착한 편의점 앞에 서있던 사람은 민규였다.여전히 검은 양복을 입고 있던 민규는 손목과 손에 든 비닐봉지를 번갈아 보다 나를 발견하고서 화색을 띄었다.

“원우씨!”

“…민규…씨?”

“몸은 좀 괜찮아요? 많이 아프다 길래 걱정 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여기 사장님이 말씀 해주셨어요, 원우씨 몸 안 좋아서 못 나왔다고.”

그래, 잠깐 잊고 있었다. 사장의 단점은 시급을 많이 주는 대신 입이 종잇장보다 더 가볍다는 사실을.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본 민규가 급히 다가와 내 손에 비닐봉지 하나를 쥐어 줬다.

“더 얘기하고 싶은데, 갈게요. 이따 염할 거리가 있는데 잠깐 나온 거라…식기 전에 먹어요!”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민규는 장례식장으로 뛰어갔다. 내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봉지가 쥐어진 채였다. 이 온기가 내용물 때문인지, 민규의 손에서 전달된 체온 때문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카운터로 들어와 조끼를 입고 내용물을 확인하니 유명 프랜차이즈의 로고가 찍힌 플라스틱 죽 그릇이 담겨 있었다. 꺼내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이 담겨있었다. 어디서 사온건가, 싶었지만 일정치 않게 썰려 있는 야채들과 마냥 하얗지 않은 쌀들 – 아마 잡곡이 섞인 것 같았다 – 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끓여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

일회용 수저 하나를 뜯어 죽을 한 숟갈 떠 먹었다. 적당히 간간하게 간이 맞춰진 죽은 무난한 맛이었다. 대체 왜, 민규는 내게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친구라서 그런 것이라면,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살가움은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다. 어차피 곧 죽을 운명인데, 만약 내가 내 미래를 얘기 한다면 민규는 울어줄까? 아니면 일거리가 생겨 돈이 들어 온다고 기뻐할까? 요새 들어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재고 정리를 얼추 마치고 나오자 편의점 통유리 너머로 운구차 한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알기론 상조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차량이었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죽음에 대비하지 못했을 까? 그 흔한 암보험 하나 들지 못해 후회하는 마당에 상조 보험이라고 가입 못한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생활비와 빚 갚는 곳에 전부 쓰였던 돈이니, 내가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꼈으면, 그래도 지금처럼 죽기 직전까지 무연고자 취급 받으며 아무렇게 묻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지는 않았을 까. 정말로 헛된 망상임을 알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떠올랐다. 오랜만에 느껴본 온정이 이렇게 사람을 뒤집어 놓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원우씨는, 편의점 말고 가는 곳이 없어요?”

어느 날 문득 민규가 물은 말이었다. 잔돈을 세던 손이 문득 멈췄다, 천천히 다시 움직였다. 편의점 말고 내가 따로 가는 곳은 사실 없었다. 어쨌든 지금도 생활비는 나가고 있고 거기에 돈 모으는 것 까지 더해졌으니 빡빡한 일상을 살고 있는 건 같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었지. 적어도 장례만은 근사하게 치루겠다는 – 문상 올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 목표를 이루려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딱히, 생각 없어요.”

“그래요? 겉보기에는 서점 같은 데나 공연 같은거 자주 보러 다닐 거 같은데.”

서점을 갈 정도로 마음의 여유는 없었고 공연 티켓 값이 곧 내 이주 치 밥값이었다.

“그닥, 그런 거 안 좋아해요.”

“그럼 저랑 갈래요?”

아, 잔돈이 비었다. 500원 가량 돈이 비는 것에 나는 다시 동전을 집어 들었다. 푼돈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내게는 한 푼도 낭비하면 안되는 목표가 있었으니까. 사소하지만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아깝게 여겨졌다.

“아버지 친구분이 공연 기획자신데 이번에 연극 한편 올리신다고 하셨 거든요. 무료 티켓 생겼는데, 같이 갈래요?”

“민규씨 애인이랑 가요. 나는 진짜 관심 없으니까.”

“원우씨가 내 애인 해줘요, 그럼.”

아.

“…게이에요?”

“따로 그런건 아닌데…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래도 나는, 원우씨가 나랑 같이 가줬으면 해서…”

“…아뇨, 기분은 안 나쁜데…”

그러고보니, 나는 왜 그렇게 돈 아끼기를 자처했으면서 그날 민규에게 사탕을 건넸던 거지? 친히 내 지갑에서 200원을 꺼내 가면서? 그 정도 액수에 큰 의미를 두면 안되는 건가?

“…뭐, 생각은 해볼게요. 대신 긍정적인 대답은 너무 기대 마시고.”

“걱정 마세요. 원우씨 말 처럼 기대는 안 할게.”

동전을 다 셌다. 다행히 이번에는 틀림없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아주 순간이지만 내 지갑에서 채워야 하는 불상사는 없어서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포스기를 마저 정리하다 문득 든 생각에 물었다.

“민규씨. 왜 나랑 친해지고 싶은건데요?”

“음?”

“저는 그렇게 재밌는 인간이 아닌데…민규씨는 언제나 나한테 잘 해주잖아요. …늘 잘해줘서, 궁금하죠.”

아, 바보같이 한마디를 꺼내는 내내 민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를 들면 민규와 눈이 마주칠 까봐, 그러면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계속 아래만 쳐다봤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이 따로 없었다. 아주 잠깐 민규가 고민하는 것인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별건 없고…좋으니까요.”

“…”

“원우씨 좋으니까 잘 해주는거죠. 새삼스럽게.”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3 Wix.com으로 제작된 본 홈페이지에 대한 모든 권리는

    편집자 봉식과 참여진들에 한하여 귀속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