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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

한가한 편의점에는 동네의 어린아이들이나 일 없는 사람들이 발을 들이곤 한다. 일이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음은

매번 오가는 사람만 오가는 동네 구석에 위치한 크지 않은 편의점. 점장은 젊다. 알바생을 구하지 않는다.

알바생을 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음은, 마찬가지로 매번 올 때마다 같은 얼굴이 반겨주니까.

 

한가한 편의점에 유리문을 열고 발을 들이미는 한가한 멀대.

거의 매일같이 출석 도장을 찍는 한가한 멀대. 매일같이 오는데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멀대.

하루는 멀끔했다가도 하루는 후줄근해지는. 젊은 점장을 볼 때마다 웃어 보이는. 그 웃음에 드러나는 덧니까지.

 

사가는 것들은 다양하다. 맥주와 건어물, 진열대에 남아있는 도시락, 컵라면, 에너지 드링크, 하루는 점장에게 바나나 우유를 준 적도.

점장은 멀대에게 관심이 있다. 편의점이 워낙 한가한지라 동그란 안경을 끼고는 책을 읽곤 하는 점장.

편의점의 점장에게 바나나 우유를 선물한 멀대.

이름도 모르고 고작 얼굴만 아는 사이에도 바나나 우유를 선물한 멀대와 그 멀대에 관심을 갖는 점장.

 

오늘도 어김없이 딸랑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멀대. 키가 커서 멀대다.

 

 

 "안녕하세요~"

 

 

멀대는 환한 미소와 덧니를 함께 보여준다.

 

 

 "네. 또 오셨네요?"

 

 

그 말에 멀대는 고개를 까닥이고는 커피 우유와 바나나 우유 그리고 컵라면을 집는다.

바코드 스캐너로 바코드를 찍는다. 덤덤한 목소리.

 

 

 "3400원입니다."

 

 

딱 3400원을 맞춰서 건네주려다가 손을 멈추는 멀대.

 

 

 "저기. 점장님... 이시죠?"

 "네, 맞아요. 무슨 일이신가요?"

 

 

점장이 꾸준히 관심 가졌던 멀대지만 막상 말을 걸어오니 당황스럽다.

 

 

 "점장님. 혹시 번호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멀대의 목소리가 점장의 귀에 박힌다.

 

 

 "번호는 왜..."

 

 

이름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번호를 물어온다.

 

 

 "점장님한테 관심 있어요. 이상하게 생각하셔도 상관은 없지만 번호는 받고 싶어요."

 

 

점장도 멀대도 남자라서일까. 멀대는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 핸드폰 줘요."

 

 

멀대는 눈을 반짝인다. 대형견 같았다. 금방이라도 쓰다듬고 싶게. 점장의 마음이 바뀌는 것도 아님에도 서둘러 핸드폰을 꺼낸다.

점장은 느리게 손을 뻗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번호와 이름을 꾹꾹 눌러 적는다.

 

 

 "됐어요."

 

 

다시 느리게 핸드폰을 쥔 손을 뻗는다.

 

 

 "아. 이름이 전원우... 이름 되게 좋네요"

 

 

횡설수설 멀대가 말을 꺼낸다. 등 뒤에 살랑거리는 꼬리가 보이는 거 같다.

 

 

 "네. 그쪽 이름은 뭐예요?"

 "저는 민규예요. 김민규."

 

 

멀대, 아니 민규. 김민규. 김민규. 제 얼굴과 참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럼 들어가세요."

 

 

봉투에 젓가락과 빨대와 함께 우유와 컵라면을 담아 건넨다.

 

 

 "네! 연락할게요!!"

 

 

딸랑 소리를 내며 문을 밀고 나간다. 멀대와 점장이 아닌, 민규와 원우로 마주한다.

 

 

*

 

민규는 문을 따고 들어가자마자 엎어진다. 언제나 조용한 핸드폰을 끌어안고 구른다.

아, 아 어떡하지, 너무 좋아. 구르면서 세 단어만을 반복한다. 번뜩, 핸드폰 화면을 키고는 문자를 보낸다.

'저 아까 편의점... 김민규예요!' 첫눈을 맞이한 강아지처럼. 답을 기다린다.

띠링! 밝고 명랑한 소리에 핸드폰으로 눈이 돌아간다.

 

'네. 알고 있어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점장이 먼저 물어올 줄은 몰랐다. 민규는 흥분을 가라앉힌다. 오타를 내지 않기 위해서.

 

'저는 22살입니다!'

'제가 한 살 형이네요. 우리 말 놓을까요?'

 

보내자마자 답이 온다. 매번 한가한 편의점이니 답은 일찍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아 형은 말 놓으세요! 저는 존댓말이 편해서'

'그래요? 그럼 나도 말 안 놓을까 봐요. 민규라고 부르면 되죠?'

 

본인도 말을 놓지 않는다는 말에 뒤이은 문자 한 통.

 

'민규야.'

 

민규는 울부짖는다. 너무 좋아서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텍스트만으로도 설레는데,

그 담백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직접 건네는 상상을 하니, 그게 22년 동안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네. 형, 원우형.'

 

원우의 문자에는 꼬박꼬박 마침표가 붙어있다. 민규는 그것을 따라 한다.

원우는 자신의 문자 말투를 따라 하는 민규를 알아채지 못한다.

원우와 민규는 서로의 이름을, 나이를 알아갈수록 상대를 해석할 수 없다. 어째 알아갈수록 의문이 드는 사람.

민규는 원우에게 전화를 건다. 무턱대고 건 전화를 받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원우가 전화를 받는다면 민규는 목이 잠길 것 같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신호음도 꼭 저같이 차분한.

달칵.

 

 

 -"여보세요?"

 

 

원우가 전화를 받는다. 역시 담백한 목소리가 듣기 참 좋다.

 

 

 -"어! 원우 형!!"

 

 

스피커 너머에서도 한껏 들뜬 제스처가 그려진다.

 

 

 -"무슨 일이에요? 민규야."

 

 

민규는 숨이 턱 막힌다. 담백한 목소리와 반존대가 야릇하다.

 

 

 -"아... 아! 그냥요, 그냥..."

 -"뭐야, 싱겁게."

 -"..."

 -"아, 저번에 바나나우유 잘 먹었어요."

 

 

눈을 감고 있자니, 각진 이목구비와 상반되는 동그란 안경을 쓴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편의점을 갔다 온 지 10분 채 되지 않았지만, 민규는 원우를 다시 보고 싶어 한다.

 

 

 -"...? 끊었나..."

 

 

뚝.

 

전화가 끊겼다. 민규에게 한참을 답이 없으니,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전화를 끊는다.

원우는 더 이상 책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 이름을 불러준 민규의 목소리가,

민규 또한 더 이상 핸드폰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 이름을 불러준 원우의 목소리가.

둘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첫사랑의 아찔함.

 

원우는 일찌감치 편의점 문을 닫는다. 아찔함에 취한 상태로, 손님을 맞이할 수는 없으니까. 손에는 책 한 권을 쥐고 집을 가려 한다.

기모가 들어있는 티셔츠와 청바지. 초겨울의 날씨에, 겉옷 하나 없이 티 한 겹을 입고 있는 원우. 집이 코앞이라 추운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등 뒤에서 허겁지겁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원우는 몸을 뒤로 튼다.

와락, 원우의 시야가 가려진다. 찬 바람을 가르고 뛰어온 냄새가 난다. 원우의 몸에 포개진 골격이 큰, 키가 큰 몸. 민규다.

원우는 손에 쥐어져 있던 책을 아래로 떨군다. 놀란 심정을 힘 풀린 손이 대신 표현해주는 것이다.

 

편의점 앞에 난 길에는 지나다니는 차도, 사람도 없다. 고요한 편의점 앞에, 둘은 포개져 있다. 원우의 두 귀로 들리는 소리는

헐떡이는 숨소리. 참 열심히도 뛰었는가 보다. 목에 닿는 숨이 뜨겁다. 

 

 

 "... 형, 형. 원우형. 어디가요."

 "집 가. 왜 뛰어왔어요. 못 산 거 있니? 오늘은 쉴 거야, 내일 다시 와."

 

 

저를 끌어안은 민규의 등을 손으로 어루만진다. 민규는 원우를 더 가까이 끌어안는다.

 

 

 "보고 싶어서 달려왔는데, 달려오길 잘했네요."

 "민규야, 심장 터지겠네. 너무 열심히 뛰어온 거 아니에요?"

 "이건 형 좋아서 심장 뛰는 건데요."

 

 

원우는 피식한다. 말 섞은지 1시간도 안됐는데, 이런 사이인 게 웃겨서.

그러나 편의점에서 스치듯 마주친 눈은 벌써, 두 달 째다. 말만 하지 않았을 뿐, 원래 이런 사이여야 마땅하다고.

 

 

 "민규야, 나 추운데. 집 가고 싶은데. 그러니까 이제 떨어져요."

 "우리 집 가요, 형. 집 구경시켜줄게."

 

 

민규는 꼭 붙어있던 상체를 떼고, 뛰는데 방해가 되어 허리춤에 묶었던 겉옷을 풀어헤쳐 원우에게 걸쳐준다.

민규는 원우의 손을 잡고 앞장선다. 집에서부터 혼자 뜀박질하던 발이, 둘이 되어 집으로 간다.

편의점에서 5분 거리도 안되는 빌라의 옥탑방으로 들어간다.

 

 

 "어?"

 "왜요, 형?"

 "같은 빌라 사네요?"

 "엥? 진짜요??"

 "응. 나 여기 1층 살아요."

 "왜 이제 알았지? 더 일찍 알았으면 더 일찍 사귀는 건데."

 "아직, 사귄다고는 안 했잖아요? 민규야."

 

 

원우는 잡힌 손을 빼내며 말을 한다. 민규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다 말고, 뒤돌아선다.

 

 

 "... 안 사귈 거예요?"

 "말 잘 들으면 사귀고."

 "..."

 "문이나 빨리 열어. 춥다니까."

 

 

민규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원우가 말을 건넨다. 좋다고 헤실 거리는 게 대형견 같다고.

민규는 재빨리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어 문을 딴다. 원우는 품에 안겼을 때 맡았던 민규의 냄새를 기억한다. 집 안에서도 역시 같은 냄새가 난다.

옥탑방 문이 닫힌다.

 

 

 "민규야."

 "응."

 

 

원우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기 위해, 선반을 뒤적거리던 민규가 대답한다.

 

 

 "되게 깔끔하게 사네요."

 "아, 그렇죠?"

 

 

헤헤하고, 덧니가 보이게 웃고는 식어빠진 치킨과, 방금 끓인 라면을 양손 가득 들고 온다.

 

 

 "형, 영화 볼래요?"

 "그래, 그러자."

 

 

원우는 옆자리를 툭툭 손으로 치며, 얼른 와서 앉으라는 듯 재촉한다. 민규는 조그마한 탁자에 치킨과 라면을 내려놓는다.

무슨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공포영화는 잘 보는지, 라면이 붇기 전에 어서 먹으라 하던지, 시답잖은 얘기로 조용한 집을 채운다.

딱히 볼 영화가 없어 고전영화를 찾아보다가, 타이타닉을 보기로 한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그냥 본다.

둘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감시하는 눈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차 안에 들어간다.

차 안으로 들어간 둘의 분위기가, 은밀해진다. 곧이어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입이, 혀가 닿기 시작한다.

원우는 민망하다. 혼자 봤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장면이, 민규가 옆에 있으니 자꾸만, 의식하게 된다.

 

화면이 바뀐다. 둘이 들어간 차 창문에 잔뜩 김이 서리고, 그 창문에 손바닥을 짚는 주인공. 다시 화면이 바뀌어, 숨을 고르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비춘다.

민규와 원우의 손가락 끝이 닿는다. 이쪽도 괜히 은밀해진 분위기에 고개 돌려 서로를 쳐다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의 입이 맞물린다. 영화 소리에 혀가 질척대는 소리가 묻힌다. 민규는 원우와 하는 모든 것을 제 귀에, 눈에 담고 싶었기에

리모컨을 찾아, 황급히 전원 버튼을 누른다. 쪽, 쪽, 쪽. 조용한 집에는 끈적한 소리가 흐른다.

민규는 원우의 바지에 말려들어간 맨투맨을 거칠게 빼낸다. 민규의 손은 원우의 배에서 가슴, 쇄골에서 척추뼈 순으로 훑는다.

민규의 손이 지나가는 동안, 원우의 입에서는 옅은 신음이 나온다.

 

 

 "으응, 아..."

 

 

원우의 신음을 듣자마자, 민규는 섞던 혀를 빼낸다. 원우는 무슨 일이냐는 듯 민규를 쳐다본다.

민규의 맨투맨 목을 어깨까지 늘려, 드러난 어깨를 문다. 민규의 손은 바쁘다. 한 손으론 원우의 등을 받치고, 한 손으론 반쯤 일어선 제 것을 만진다.

 

 

 "아, 형, 형, 원우형."

 

 

원우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앓는 소리를 내더니, 바지 버클을 급히 풀어 헤친다. 흥분을 제어할 수 없는 나이, 22.

원우는 민규의 바지와 브리프를 벗겨주고는, 제 바지와 브리프도 벗어던진다. 민규는 경험도 없는 게, 급하기만 하다.

민규는 딱딱하게 선 제 것을, 얼른 삽입했으면 한다. 그런 민규를 알기에, 원우는 제 손으로 뒤를 푼다.

이마에서부터 땀이 흐른다. 

원우는 민규에게 자신의 뒤를 보인다. 그 둘이 하고 있는 짓은, 민규가 야동에서나 보던 짓이다. 그간 봤던 야동을 떠올리다가, 단숨에 삽입한다.

 

 

 "아!"

 

 

민규는 조심스레 허리 짓을 시작하고는, 눈으로 훑는다. 들썩이는 허리에 맞춰 들썩이는 원우의 모든 것을.

앗, 응, 민규야. 민규야. 하는 말에 응, 형. 원우형. 하고 대답한다.

어설프게 스팟 주위만 찍는 민규가 언짢았는지, 스스로 허리를 돌려 스팟을 찾는다. 기껏 찾으니 원우의 뜻을, 민규가 따라주질 않는다.

민규는 허리를 멈추고, 원우의 어깨에 코를 묻는다. 스읍, 하아. 소리 나게 숨을 들이켰다, 내쉰다.

 

 

 "... 뭐 해..."

 "할 때, 찡그리는 표정 말고 다른 표정 없어요?"

 "...스팟, 기껏 찾아줬더니. 그거 물어보려고 멈춘 거면 우리 헤어지자."

 

 

원우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건넨다. 하다 말고 갑자기 애태우는 게, 무슨 뭣 같은 매너인가. 그 말에 민규는 허리를 한 번 튕긴다.

 

 

 "흐읏...! 아..."

 "그러면 안 되죠. 형 나쁜 남자네."

 

 

민규는 원우의 것을 손에 쥔다. 상하 운동을 하는 몸에 맞춰, 상하 운동을 하는 손. 원우의 표정에는 일그러진 표정 하나. 느끼는 표정 하나.

두 개의 표정이 나타나, 묘하고 야릇하다. 민규가 덧니로 원우의 목덜미를 앙, 앙 깨무니, 원우의 입에서도 곧잘 앙, 앙 소리가 나온다.

 

 

 "응, 아, 앗, 민규, 야, 민, 규야."

 "왜, 왜요, 형, 원우, 형."

 "나, 갈, 갈 것 같아, 아, 으응..."

 "... 난 아직 아닌데."

 

 

원우의 것을 잡고 아래위로 움직이던 손이 멈춘다. 세게 쳐올리던 허리도 느려진다. 민규는 또 저만 즐기는 행위를 한다.

 

 

 "형 먼저 사정하면, 매일 나랑 이짓해야돼요."

 "아, 아...그게, 그게 어떻게 내 맘대로 되는데..."

 "와, 이 형 너무 여우다..."

 "..."

 

 

원우가 저도 모르게 앙탈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니, 민규가 그런다. 여우라고. 원우는 민망해서 입을 닫아버린다. 

민규는 다시 원우의 것을 쥐고 아래위로 흔든다. 허리 짓도 함께 빨라진다. 앗, 아, 야, 아, 으응, 잠깐만. 다급한 원우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둘은 동시에 사정한다. 사정하기 직전 민규가 원우의 뒤에서 제 것을 빼내어, 원우의 맨투맨은 민규의 액으로 흠뻑 젖는다. 

 

 

 "야, 야! 너, 내, 내 맨투맨...!"

 "아쉽다."

 "뭐?"

 "동시에 사정했잖아요. 아쉽다."

 

 

원우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원우의 황당한 표정을 본 민규는 제 반팔 티와, 수면바지를 품에 안겨준다.

 

 

 "형, 먼저 씻어요."

 "같이 씻자고 할 줄 알았는데."

 "같이 씻으면 안 될 텐데. 같이 씻을까요?" 

 "아니."

 

 

원우는 화장실로 곧장 들어간다. 바디워시를 샤워볼 위에 꾹꾹 짜내다가, 속옷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금세 생각을 관두고, 샤워볼을 몸에 비빈다. 다 씻고 샤워기를 끄니, 문 사이로 민규가 말한다.

 

 

 "형, 다 씻었어요?"

 "응."

 "문 열어봐요."

 "... 왜?"

 "속옷 주려고."

 "아."

 

 

불순한 생각을 한 원우가 제 머리를 한 대 치고, 손만 오갈 정도로만 문을 연다.

민규의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수면바지를 입는다. 문을 열고 나가니, 아까의 소동이 무안할 정도로 깔끔하다.

민규는 원우가 방금 씻고 나온 화장실로 발 걸음을 옮긴다. 원우는 몇 년 지기 친구 집인 양, 민규의 침대에 드러눕는다.

드러누운지 얼마 안 돼서, 금세 잠이 든다. 민규는 씻고 나와 원우를 부르려던 입을 다물고, 의자에 걸쳐져있던 담요를 덮어준다.

민규는 원우가 누워있는 침대가 아닌, 침대 옆 바닥에 눕는다. 만약에 오늘 말을 걸지 않았다면, 편의점이 문 닫을 때까지 말을 못했을까.

민규가 눈을 깜빡하고 감았다 뜨니, 원우가 제 옆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분명 침대 위에 있었던 사람이지만, 어느샌가 제 옆으로 온 것이 신기하다.

원우와 아침을 먹으려 냉장고를 보니, 계란 3개와 프랑크 소시지가 있다. 구운 소시지와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아 조그마한 탁자에 올린다.

 

 

 "형, 원우형~일어나요~"

 "으음... 뭐야."

 

 

원우가 부스스 깬다. 창문 너머로 들어온 햇빛에 등을 지고 있어, 역광 때문에 잔뜩 시커먼 민규.

 

 

 "아침 먹고, 편의점 가셔야죠. 점장님~"

 "... 맞다."

 

 

원우는 슬슬 기어서, 탁자 앞에 앉는다. 잘 먹을게. 하고 밥을 크게 뜬다. 민규가 일어서더니 냉장고 앞으로 간다.

탁자로 돌아오는 민규의 손을 보니, 바나나우유가 들려있다. 또 바나나우유.

 

 

 "바나나우유 먹으면서 편의점 가세용, 점장님."

 "또 바나나우유야?"

 "싫으면 커피우유?"

 "그냥 바나나우유 먹을게. "

 "..."

 "왜?"

 "이따가."

 "..."

 "편의점 찾아갈게요."

 

둘의 눈이 편의점이 아닌 곳에서, 한 번 더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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